Hide & Seek


2022

Hide&Seek



2022

'아름답다’는 감각은 무엇인가. 아름다움은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자 감각이다. 같은 대상을 보는 시각은 보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며 이를 통해 발견하는 현상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간의 심미적 행위는 어떠한 과정이며, 이는 논리적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닌 부조리한 소망에 가깝다. 미감은 일상적인 문법을 파괴해 그것에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망각하게 하여 주체의 범위를 허문다. 이러한 연쇄적 과정을 가로지르는 감각들은 새로운 감각들을 포섭하고 경계가 확장됨에 따라 아름다움의 영역을 넓혀 나간다. 관계를 통해 확장하는 관계망과 같이 감각들은 서로 호응하며 아름다움을 확장한다. 즉, 아름다움은 하나의 특정한 감각이 아닌 과정들 간의 맺음에 있고 끊임없는 행위를 통해야만 획득, 확장 가능한 것이다. 


작가가 무언가를 선택하고 그것들을 조합할 때 그의 신경계는 더이상 신체 내부에 국한되지 않는다. 손끝은 붓끝 혹은 칼끝으로 연장되고, 그의 살갗은 극 소량이나마 닿은 대상에 포함되기도 한다. 그렇게 일부의 의식들이 전이된 오브제들은 더이상 바라봄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거듭난다. 독립적인 동시에 의존적인 오브제들은 상호작용하며 관계하고 끊임없이 가정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관람자는 그 중 일부만을 마주한다. 관찰되지 않은 관계는 미적 가능성으로 존재하므로 새로운 관찰을 통해 심미적 경험이 회광한다. 이렇게 증진된 관계망은 새로운 감각의 주체를 생성하고, 새로이 태생한 주체는 비직관적인 감각을 체화한다. 더이상 고전적인 관념으로서 주체는 위상을 잃고 동시에 부분 혹은 전부는 여러 곳에 존재하는 것이 가능해지며, 나-외부, 주체-객체 등의 양극이 무의미해진다.


임다현 작가는 ‘숨바꼭질’을 통해 시작과 끝, 원인과 결과와 같은 선형적 과정을 생략하고 사건을 비틀며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관찰할 것을 제안한다. 이 행위를 통해 이분법적 도식을 해체하고 새로운 관계를 재조합할 수 있는 단서를 나열하여 보다 느슨하지만 확장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언뜻 황당하게 늘어뜨려져 있는 오브제들은 서로 얽혀 호응하며 끊임없이 진동한다. 예를 들어, 엉덩이에 꽂혀 있는 파티 블로우는, 입술과 접촉해야 하는 사물이 항문에 꽂혀 있는 모습에 순간 당황스럽지만, 결국 항문은 하나의 통로로 입과 연결되어 있으며 입술의 반대 면은 항문이니 이 또한 입술과 접촉한 모습이라는 생각에 이내 당황은 사라진다. 당황과 납득, 이율배반적인 감각을 동시에 느끼는 순간 새로운 감각이 피어나며, 인식의 경계선이 점점 희미해 지고 이내 사라진다. 모순적인 아상블라주들을 관람자 입장에서 논리적으로 다시 조립하는 시도는 관람자 또한 오브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어, 작가-오브제-관람자-공간 구분을 무너트린다. 이러한 행위는 순차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비선형적으로 순환하고 불규칙적으로 나타나며, 예측 불가능하다. 관람객은 이 카오스로부터 언제든 퇴장 할 수 있으나, 위의 상호작용은 파동을 그리며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그 여운은 일상의 무료함을 심미적 경험으로 승화시킨다. 


text by 김상의

 



귀국 후 작가는 부유(浮遊)했다.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던 시간, 그럼에도 수많은 도시에 각 조각(piece)들이 남아 저마다의 시간으로 흐르고 있다고 믿었다.

 

현대 물리학의 중첩 현상을 기저에 두고 하나의 주체가 다양한 장소에 병렬 존재한다는 상상을 지속할 수 있었다. 서구 고전적 공간에서 존재는 지금 여기, 혹은 저기에 있어야 한다. 단편적이다. 그러나 미시 세계의 입자는 중첩 현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한다. 작가는 런던, 베를린, 한국에 동시 존재하는 주체의 상태를 조각난(fragmented) 형상들로 표현한다.  

 

전시장 곳곳에 조각난 형상은 숨바꼭질을 닮았다. 몸을 숨겨도 일부가 드러난다. 주체는 보이지 않으나 공간 속 숨어있는 상상을 유도하며, 사라진 신체는 다른 곳의 출연을 예고한다.

 

이렇듯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와 공존하며, 인과의 법칙은 부서진다. 작가는 오브제의 배치로 이를 입증한다. 입구와 출구, 시작과 끝, 주체와 객체 등 이분법적 경계를 지운다. 이제 주체는 통로이자 매개가 되어, 관습적으로 이어져온 관계와 공간의 개념을 끊고 새로운 연결을 모색하는 것이다. 



Transparent Torso

다층적 존재에 대한 탐구를 형상화했다. 근대 조각사에서 토르소(Torso)는 독립적이며 완전한 존재였다. 작가는 이를 보조적 객체를 상징하는 좌대에 올렸다. 투명한 토르소보다 선명한 좌대는 조각과 좌대의 관계에 물음표를 찍는다. 

2019년에 제작된 이 작업은 전시 <Hide & Seek>에서 재해석된다. 

정면에서는 2차원의 체험이, 이동하는 순간 3차원의 체험으로 확장한다. 

 

Half

공중에 매달린 가발과 의자에 걸린 양말, 그 사이엔 여백이 있다. 대중매체에서 인물의 순간 이동 시 신체의 중심부터 사라지는 설정을 차용했다. 본체의 이동 뒤 남겨진 것들을 드러낸다. 남겨진 가발과 의자는 신체의 일부로서 주체와 객체의 모호한 경계를 표현한다.

 

착지하는 발

바닥에 우뚝 서 있는 부츠와 달리, 벽으로 휘어진 발은 아슬아슬하다. 작품은 외출과 귀가의 순간을 하나로 이어가며, 시간의 선형적 관계를 부순다. 출발과 도착을 알 수 없는,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상황을 풀어낸다.

 

In/Out

항문에 꽂힌 파티 블로우는 낯설다. 입과 항문은 신체의 입구와 출구이며, 입구와 출구가 연결된 부조리한 상황은 불편하면서도 새롭다.

 

No Score  

야구는 순환이다. 1루, 2루, 3루를 돌아 다시 홈으로 돌아오는 야구는 언뜻 시작과 끝의 경계를 지우기도 한다.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매트 위의 배트는 경기 시작 전과 후를 모호하게 만든다.

 

Square One 

귀국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점에 선 작가의 서사이자 전시의 구조다. 전시장 곳곳의 작품들이 마치 박스에서 생성된 듯 공간의 중앙을 차지한다. 이는 공간의 좌표를 비틀고 재조합하는 '루빅스 큐브'의 형태이며, 작품들이 흩어지고 다시 모이는 근원지이자 전시의 모든 서사가 시작되고 완성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Photo by Jung Ran 

귀국 후 작가는 부유(浮遊)했다.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던 시간, 그럼에도 수많은 도시에 각 조각(piece)들이 남아 저마다의 시간으로 흐르고 있다고 믿었다.

 

현대 물리학의 중첩 현상을 기저에 두고 하나의 주체가 다양한 장소에 병렬 존재한다는 상상을 지속할 수 있었다. 서구 고전적 공간에서 존재는 지금 여기, 혹은 저기에 있어야 한다. 단편적이다. 그러나 미시 세계의 입자는 중첩 현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한다. 작가는 런던, 베를린, 한국에 동시 존재하는 주체의 상태를 조각난(fragmented) 형상들로 표현한다.  

 

전시장 곳곳에 조각난 형상은 숨바꼭질을 닮았다. 몸을 숨겨도 일부가 드러난다. 주체는 보이지 않으나 공간 속 숨어있는 상상을 유도하며, 사라진 신체는 다른 곳의 출연을 예고한다.

 

이렇듯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와 공존하며, 인과의 법칙은 부서진다. 작가는 오브제의 배치로 이를 입증한다. 입구와 출구, 시작과 끝, 주체와 객체 등 이분법적 경계를 지운다. 이제 주체는 통로이자 매개가 되어 관습적으로 이어져온 관계와 공간의 개념을 끊고 새로운 연결을 모색하는 것이다. 



Transparent Torso

다층적 존재에 대한 탐구를 형상화했다. 근대 조각사에서 토르소(Torso)는 독립적이며 완전한 존재였다. 작가는 이를 보조적 객체를 상징하는 좌대에 올렸다. 투명한 토르소보다 선명한 좌대는 조각과 좌대의 관계에 물음표를 찍는다. 

2019년에 제작된 이 작업은 전시 <Hide & Seek>에서 재해석된다. 

정면에서는 2차원의 체험이, 이동하는 순간 3차원의 체험으로 확장한다. 

 

Half

공중에 매달린 가발과 의자에 걸린 양말, 그 사이엔 여백이 있다. 대중매체에서 인물의 순간 이동 시 신체의 중심부터 사라지는 설정을 차용했다. 본체의 이동 뒤 남겨진 것들을 드러낸다. 남겨진 가발과 의자는 신체의 일부로서 주체와 객체의 모호한 경계를 표현한다.

 

착지하는 발

바닥에 우뚝 서 있는 부츠와 달리, 벽으로 휘어진 발은 아슬아슬하다. 작품은 외출과 귀가의 순간을 하나로 이어가며, 시간의 선형적 관계를 부순다. 출발과 도착을 알 수 없는,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상황을 풀어낸다.

 

In/Out

항문에 꽂힌 파티 블로우는 낯설다. 입과 항문은 신체의 입구와 출구이며, 입구와 출구가 연결된 부조리한 상황은 불편하면서도 새롭다.

 

No Score  

야구는 순환이다. 1루, 2루, 3루를 돌아 다시 홈으로 돌아오는 야구는 언뜻 시작과 끝의 경계를 지우기도 한다.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매트 위의 배트는 경기 시작 전과 후를 모호하게 만든다.

 

Square One 

귀국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점에 선 작가의 서사이자 전시의 구조다. 전시장 곳곳의 작품들이 마치 박스에서 생성된 듯 공간의 중앙을 차지한다. 이는 작품들이 흩어지고 모이는 근원지이며, 전시의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고 완성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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